주주아찌 2025. 4. 1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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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슬픔

벗이여,
너는 젊음의 새벽을 그리워하며
그 찬란함을 기억하겠지만
나는 그 시절을
닫힌 창살처럼 기억하노라.

사람들은 말하네
아득한 소년기의 나날이
걱정도, 멍에도 없는 황금의 시간이었다고.
하지만 나에겐
그 시절이란
마음이 삼킨 외로운 슬픔의 씨앗이었네.

그 슬픔은
가슴에 길게 뿌리내려
오랜 세월 아무 말 없이 자라,
어느 날 사랑이
문득 마음의 문을 열고
어두운 구석마다 빛을 드리우기 전까지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했네.

사랑은
내게 혀로 말하고
눈물로 울게 하였네.

너는 정원의 나무 그늘과
골목 모퉁이의 속삭임을 기억하겠지만,
나는 지금도
북쪽 에덴의 어느 산자락을 떠올리네.
눈을 감으면
마법처럼 펼쳐지던 그 골짜기,
영광에 덮인 산들이 하늘을 더듬던 날들을.

귀를 막으면
도시의 소란은 사라지고
실개천의 속삭임,
잎새 흔드는 소리가 들렸지.

그리움에 젖은 풍경들이
어릴 적 내 영혼을 아프게 찌르던 시절,
마치 새장 속 매가
하늘을 가르는 새 떼를 바라보는 것처럼.

나는 들로 나갔다가
이유 모를 서러움 안고 돌아왔고,
회색 하늘에서 내리던 빗방울은
내 마음에도 또옥 또옥 떨어졌지.

새들의 노래,
샘물의 재잘거림은
내게 기쁨이 아닌
알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왔네.

순진함은 사람을 비우고,
빈 사람은 근심이 없다 하지.

그러나 너무 많이 느끼고
너무 적게 아는 아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존재.

하나는 꿈결처럼
존재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발밑 먼지를 뿌리며
두려움과 어둠으로 끌어당기지.

외로움은 부드러운 손처럼 다가와
내 심장을 움켜줘 아리게 했고,
슬픔의 그림자는
백합처럼 떠는 내 마음 위로
한잎 두잎 내려앉았네.

친구도 놀이도 있었지만
나는 스스로 고요를 택했지.

고독은 내게서
청춘의 날개를 걷어내고
산중의 고요한 웅덩이로 만들었지.

나는 그 고요 속에
구름과 나무의 그림자를 비췄지만
바다로 흐를 물길은 찾지 못했네.

열여덟의 해
내 생에 한 봉우리로 솟아올랐던 그 해에
나는 사랑의 눈을 떴고,
삶의 어둠과 빛을 처음 보았지.

그 해, 나는 다시 태어났네.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삶은 책장 속,
한 장의 빈 페이지로 남을 뿐.

그 해, 나는
아름다운 여인의 눈에서
천사의 숨결을 보았고,
악한 사내의 가슴에서
지옥의 불길을 느꼈다.

삶의 아름다움과 사악함 속에서
천사와 악마를 보지 못하는 이여
너는 사랑을 알지 못하고
영혼은 텅 빈 그릇일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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